AUTHOR’S ORIGINAL · 2026년 8월 12일 · ARCHIVE 224376697434
똑같이 버는데 세금이 다르다? 우리가 몰랐던 '수평적 형평성'의 반전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1. 노을을 보는 사람과 야근하는 사람의 딜레마
우리는 보통 '공정한 세금'이라고 하면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수직적 형평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직관을 흔드는 근본적인 법철학적 질문이 있습니다.
정치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1974년 그의 저서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노을 보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사람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가?"
잠재적 능력이 동일한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명은 여유를 선호해 적게 벌고 노을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다른 한 명은 더 많은 소비를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법니다. 결과적으로 소득이 높은 후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조세 이론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수평적 형평성(Horizontal Equity, HE)'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이 수평적 형평성이 왜 현대 조세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왜 조세 정책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반전'을 선사하는지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2. [포인트 1] 수평적 형평성: "능력이 같다면 세금도 같아야 한다"
수평적 형평성의 핵심 정의는 '동일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는 '동일한 처지'를 단순히 현재의 '소득'이 아닌 '능력(Ability)'으로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헨릭 요르달(Jordahl)과 루카 미켈레토(Micheletto)의 연구에 따르면, 수평적 형평성이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여가 선호도(Preference for leisure)'와 관계없이 동일한 세부담을 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는 경제학의 '자기 책임' 원칙과 맞닿아 있습니다.
능력: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므로 사회적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취향(선호): 여가를 즐길 것인지, 더 일해서 소비할 것인지는 개인이 선택한 영역이며, 그 선택에 따른 결과(기회비용)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HE 옹호자들은 정부가 개인의 '취향'에 개입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만 징벌적 세금을 매기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3. [포인트 2] 상식을 뒤엎는 결과: 여가와 관련된 물건에 보조금을?
여기서부터 경제학의 마법 같은 반전이 시작됩니다. 일반적인 최적 조세 이론(Econ 101)은 "사람들이 세금을 피하려 일을 안 하고 노는 것을 막기 위해, 여가와 함께 소비되는 물건(여가 보완재)에 높은 세금을 매기라"고 가르칩니다. 스키나 영화 티켓에 중과세하여 사람들을 일터로 유도하라는 것이죠.
하지만 수평적 형평성(HE) 제약이 가해지면 결과는 180도 달라집니다. 요르달과 미켈레토는 오히려 여가 관련 재화를 장려(Encouraged)하거나 보조금(Subsidized)을 주는 것이 최적일 수 있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놓습니다.
"통상적인 발견과는 반대로, 우리는 여가와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재화가 조세 시스템에 의해 장려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여가와 보완적인 재화는 오직 두 개의 사적 재화와 여가만 존재하는 경제 체제에서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Jordahl & Micheletto, 2003, p.3)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그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HE 제약은 정부가 같은 능력의 '열심히 일하는 자(Type 3)'와 '여가를 즐기는 자(Type 2)'에게 동일한 세금을 걷도록 강제합니다. 이때 효율성만을 고려한 '최적 세제'를 쓰면 여가를 즐기는 자가 상대적인 이득을 보게 됩니다. 정부는 이 불공평을 바로잡기 위해 하드워커의 소득을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막대한 후생 손실을 초래합니다. 결국 정부는 HE라는 '공정함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여가 재화에 보조금을 주어 두 집단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는 '차선책'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포인트 3] "최고 소득자에게도 예외는 없다": 깨져버린 조세의 금기
경제학에는 '최상단에서의 무왜곡(No distortion at the top)'이라는 성역과 같은 정리가 있습니다. 소득 분포의 최상위에 있는 능력자에게는 한계 세율을 0으로 설정하여 근로 의욕을 꺾지 않는 것이 전체 사회 복지에 유리하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수평적 형평성 조건 하에서는 이 금기마저 깨집니다. HE 제약이 가해지면 소득 최상위층 내에서도 '일하는 사람'과 '쉬는 사람' 사이의 형평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최상위 능력자의 한계 실효 세율(Marginal Effective Tax Rate, METR)은 0이 아닌 값(different from zero)을 갖게 됩니다.
이 발견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함의를 던집니다. 이론적 효율성(Welfare maximization)을 위해 최상위층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수평적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5. [포인트 4] 이론가들은 왜 이 원칙을 미워하는가? (비판적 시각)
물론 모든 학자가 이 원칙에 열광하는 것은 아닙니다. 루이스 카플로(Louis Kaplow)나 리암 머피(Liam Murphy),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 같은 '이상적 이론가(Ideal Theorists)'들은 HE를 '공허한 형식주의' 혹은 '신화'라며 맹비난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전 소득의 무의미성 (The Myth of Ownership): 머피와 네이글은 세금 이전의 소득(Pre-tax income)은 법과 제도의 결과물일 뿐, 그 자체로 독립적인 도덕적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세전 소득을 기준으로 형평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복지 극대화의 방해물: 카플로는 조세 정책의 유일한 목적은 '사회 전체 후생의 극대화'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HE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로막는 성가신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하향식(Top-down)' 관점입니다.
6. [포인트 5] 조세 정의의 '현실적 타협점'으로서의 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라 린지(Ira Lindsay)는 수평적 형평성을 '비이상적 상황(Non-ideal circumstances)'에서 매우 '유용한 기술적 도구(Useful technology)'라고 방어합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무엇이 정의로운 분배인지에 대해 완벽히 합의할 수 있다면(이상 이론), HE는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린지는 HE가 도덕적 견해 차이가 극심한 사회에서 협력을 가능케 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법이자 '관습적 공정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수평적 형평성은 깊은 도덕적 불일치 속에서 사회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관습적 공정성이다. 세전 소득을 규범적 기준으로 취급함으로써 분배 문제에 대한 갈등이 낭비적이고 불공정한 조세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Lindsay, 2016, p.84)
즉, HE는 특정 집단이 로비를 통해 자신들만 세금을 덜 내는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나, 이념 갈등으로 인한 '누더기 조세 정책(Wasteful patchwork of taxes)'을 방지하는 강력한 방어벽이 되어줍니다.
7. 결론: 공정함은 정답이 아닌 '약속'일지도 모른다
수평적 형평성은 때로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여가에 보조금을 주라는 식의 상식 밖의 결과를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원칙이 여전히 조세 제도의 근간으로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중재하고 "우리는 서로를 공정하게 대하고 있다"는 신뢰를 주는 현실적인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체의 효율성을 위해 개인의 공정함에 대한 직관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요? 효율적인 시스템이 항상 정의로운 시스템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조세의 평등'은 무엇입니까?
이 묵직한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조세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Source: Justine Knebelmann et al., Discretion versus Algorithms: Bureaucrats, Tax Equity and Acceptability, Working Paper, Institute for Fiscal Studies, April 24,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