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S ORIGINAL · 2026년 8월 14일 · ARCHIVE 224378194102
"인간은 왜 손해를 보면서도 남을 돕는가?" : 에른스트 페르가 밝혀낸 인간 본성의 4가지 반전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1. 경제학이 '지루한 이론'에서 '인간의 과학'으로 변한 순간
당신이 실험실에 있는 오스트리아 군인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 당신에게 아주 낮은 임금을 제안합니다. 주류 경제학의 '합리적 기계(Homo Economicus)'라면 푼돈이라도 챙기는 것이 이득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화를 내며 외칩니다. "우리 노조를 만듭시다!" 그리고 거래를 거부해 스스로 손해를 봅니다. 이 행동은 오류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진정한 본성일까요?
에른스트 페르(Ernst Fehr)가 학문에 입문했던 1970년대의 경제학은 수학적 모델과 일반 균형 이론이 지배하던, 다소 '지루한' 수학의 영역이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세상의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고 싶어 했던 페르에게, 인간을 단순히 수식 속의 기계로 치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론의 우아함 속에 갇히기보다,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실증적 진실을 파헤치는 '인간의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갈망했습니다.
2. 포인트 1: 이론의 우아함보다 중요한 것은 '실증적 진실'이다
페르의 연구 인생 초기, 그는 노동 시장에서 왜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지, 즉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그는 당시 주류 경제학이 거의 폐기하다시피 한 이 개념을 되살리기 위해 효용 함수에 '공정성(Fairness)'을 도입한 논문을 썼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냉담했습니다. 이론가들은 "공정함 같은 감정은 경제학이 아니다"라며 그의 논문을 도처에서 거절했습니다.
이 좌절의 시기, 페르는 과학적 진보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이정표를 세웁니다.
"과학적 진보에서 이론이 우아한지, 아름다운지, 혹은 가설과 결론 사이의 거리가 짧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증적으로 참(True)인가이다."
그는 수식의 아름다움에 매몰되지 않고, 실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경제학이라는 척박한 땅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3. 포인트 2: 시장의 경쟁 속에서도 '공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버넌 스미스(Vernon Smith)를 비롯한 고전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공정성 같은 심리적 요인은 금세 증발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이 학습을 거듭하고 시장이 수렴될수록 결국 이기적인 본성만 남을 것이라는 예측이었습니다.
페르는 이 '지적 전쟁'에서 실험으로 맞섰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반복되는 경쟁과 상호작용 속에서도 인간의 공정성 추구 경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페르는 공정함이 일시적인 오류가 아니라, 학습과 수렴을 거친 후에도 유지되는 안정적인 '행동 평형(Behavioral Equilibrium)'의 속성임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왜 임금 삭감에 격렬히 저항하는지, 그리고 왜 현대 경제학이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실체를 다시 인정해야만 하는지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4. 포인트 3: '이타적 처벌' – 실패한 실험에서 발견한 위대한 본성
페르의 가장 혁신적인 개념인 '이타적 처벌(Altruistic Punishment)'은 9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패한' 실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실험 도중 한 군인이 돌발적으로 노조 결성을 선동하며 실험 설계가 망가졌을 때, 페르는 그 이면의 심리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사후 설문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군인들은 낮은 임금을 준 고용주에게도 화가 났지만, 그 낮은 제안을 덥석 수락해 동료들의 단결을 해친 '무임 승차자(Free-rider)'들에게 훨씬 더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페르는 이 '분노(Anger)'라는 감정이 어떻게 경제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지 추적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써서라도(비용 지불) 공동체의 규칙을 어긴 이기적인 배신자를 응징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자신이 직접적인 이득을 얻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협력을 지키기 위해 처벌의 비용을 감수하는 이 '이타적 처벌'이야말로, 인류가 거대한 사회적 협력을 유지해온 숨은 엔진이었던 것입니다.
5. 포인트 4: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 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법
취리히 대학교 경제학부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페르의 행정적 성공 뒤에는 정교한 행동경제학적 설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직의 성과가 구성원의 개별적인 '능력'보다 '인성(Character)' 혹은 '친사회성(Pro-sociality)'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근거는 '불완전한 계약(Incomplete Contracts)'에 있습니다. 노동 계약은 본질적으로 모든 업무를 완벽히 명시할 수 없기에, 직원은 언제든 '태업(Shirking)'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은 구성원의 자발적인 협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업무 자체가 일종의 '공공재 생산'이 됩니다.
페르는 취리히 대학을 개혁하며 소수의 '나쁜 사과(Bad Apples)'가 조직 전체의 협력을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첫째, 선발 단계에서부터 친사회적 캐릭터를 우선시했습니다. 둘째, 권위적인 기존의 '석좌 시스템(Chair System)'을 타파하기 위해 '의지가 있는 자들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구축했습니다. 친사회적인 교수들이 먼저 자신의 기득권과 자원을 공공을 위해 내놓도록 유도하여 조직 전체의 체질을 바꾼 것입니다.
결론: 제도가 인간의 선의를 결정하는가?
에른스트 페르의 연구는 인간의 선호가 고정된 불변의 값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인간은 제도와 사회적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페르가 연구한 '체르노빌 천연 실험(Chernobyl natural experiment)'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986년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 구름에 더 많이 노출되었던 이들은 수년이 지난 후에도 일반인보다 더 위험 회피적이고 인내심이 낮은 성향을 보였습니다. 외부의 충격과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경제적 선호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인간 본성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며, 어떤 제도(Institution)가 설계되느냐에 따라 그중 하나가 발현됩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더 친사회적이고 협력적인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지금 어떤 제도적 실험을 시작해야 하는가?"
인간 본성의 반전을 읽어낸 페르의 통찰은,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과학적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Source: Ernst Fehr, What 40 years of research taught me about human nature, Thought Supply, UBS Center for Economics in Society, Aug 2026